2015-03-01
빅 히어로
illusion Illusion
빅 히어로
BIG HERO 6
★★★1/2
1문장 단평 : 돌고 도는 영향의 주고 받기
- 미쿡 '애니메이션 무비'에서 디즈니가 백설공주로 장편 애니메이션의 시대를 열어서 5분의 막간극 애니메이션의 흐름을 깨버린 이후로,
디즈니는 이쪽 업계의 선두에 서서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입장을 고수해 왔습니다.
이 장편 극장용 '애니메이션 무비' 시장이 과거 전통적인 '손으로 그리는' 페인팅에서 '컴퓨터 그래픽스에 의한' 모델링 작업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디즈니는 선견지명으로 CG개발사를 세운 누군가의 '픽사' 때문에 기존에 고수하던 디즈니 식 애니메이션 작법에 크게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지금의 디즈니는 픽사를 포함한 기득권의 입장에서 철저하게 보수적 미국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작품들에 몰두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엔딩 크레딧에서 손으로 그린 과거 CARTOON 풍 느낌의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분명히 이 작품은 과거의 페인팅과 현재의 모델링을 잇는 과정에서 디즈니 자신과 디즈니에게 영향을 주고 받은 다른 작품들,
구체적인 일례를 들기는 애매하지만 이미 어디선가 본 것 같은 히어로물이나,
왜쿡산의 로봇물 이나 기타 다른 작품들에서 왠지 한번 이상 본 것 같은 그런 느낌의 다양한 내용들이 뒤섞인 종합선물세트에 가깝다는 인상이 듭니다.
그런 종합선물세트에 가까운 느낌 때문인지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흥행에 성공하면 (디즈니의 전통대로) 따라붙을 비디오용 속편이나,
혹시나 나올지도 모를 이 작품의 후속 TV시리즈에서는 가능하다면
CG모델링이 아니라 손으로 그린 손그림의 느낌을 살릴 카툰 풍 '그림'으로 나왔으면 싶어지기도 합니다.
= 단순히 종합 선물 세트~라고 말하기에는, 이 작품은 생각보다 다양한 것들이 뒤섞이는 과정에서
디즈니가 영향을 주었던 다른 애니메이션 회사나, 일본 같은 다른 방향에 속한 작품군에서 받은 영향을
딱히 숨기거나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 덕분에 이것저것 뒤섞이는 과정에서 단순한 비빔밥 같은 게 아니라,
맛이 뒤섞이면서 좀더 다른 맛을 이끌어낸 잡탕찌개라는 인상입니다.
우선 딱 봤을 때 바로 와닿을 수 있는 메인 스트림인 미국식 코믹 히어로에다,
일본식 마스코트 로봇 및 소위 세카이물 적인 특성이라던가
그 밖에도 어느 나라인지 특정하기 힘든
미묘하게 뒤섞인 복합적인 느낌의 배경 등등이 이것저것 잘 뒤섞여서 딱히 어색하지 않게
(현재에는 거의) 미국적인 느낌만이 아니라 '국제화된' 복합적인 인상이
작품 내에서 그럭저럭 우러나고 있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전세계적인 흥행을 한 전작 [겨울왕국]은 철저하게 서양 쪽,
특히 북유럽에 가까운 '구체화'된 이미지가 있습니다만, 이 작품은 미국적이다~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여러 인종과 문화가 뒤섞인 '잡탕찌개'라는 인상의 미국적인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 사실 처음에 히로가 들고 나오는 로봇 격투용 (3단분리) 로봇은 아톰을 떠올리게 하는 면도 있고,
또 일본 로봇물에서는 적지 않게 등장하는 '작은 것이 합체하여 하나의 군체를 이루는' 형식을 따라가기도 합니다.
그리고 집단 히어로물은 미국 히어로 만화에서도 많이 사용되었지만,
구체적으로 색상과 개성을 확실히 살리면서 존재감을 어필하는 것은 일본에서 시작된 파워레인저~같은 전대물 비슷한 인상도 남아 있다고 하겠습니다. )
- 사실 이 작품의 진짜 의의는 그런 국제적인 인상보다도 디즈니가 마블 코믹스를 합병한 다음에,
처음으로 나오는 '마블 원작 만화를 기반으로 하는 디즈니 작품'이라는 데 있지 않나 합니다.
원작 격인 마블 코믹스의 만화 '빅 히어로 6'는 그룹 히어로라는 점 외에는 인물들의 이름이나 설정도 좀 다르기도 하고
사실 마블 사의 원작 만화들과 마블 시네마 유니버스의 차이 이상으로,
원작 만화 '빅 히어로6'와 애니메이션 무비 [빅 히어로]는 갭이 있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원작격 마블 코믹스 '빅 히어로 6'가 일본 쪽 팬들을 염두에 두고 일본 캐릭터의 비중이나 일본 이름들이 많이 나오지만
이 디즈니 영화에서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보다 글로벌한 전개로 잡탕찌개 같은 인상으로 '미국이니까 가능한'
다국적인 인물 구성과 설정 등이 주어집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미국의 '수준 높은 대학 연구실'하면 떠올릴 수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를 통해서
일종의 '상아탑'에서 벗어난 판타지에도 가까운 '팩스 아메리카나'적인 인상을 살리며
다양한 글로벌한 문화 코드들을 미국적으로 잘 정돈한 잡탕찌개적인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외려 지금까지 전 세계의 동화나 유명한 이야기들을 독자적으로 애니메이션 영화로 만들어온 디즈니의 전통과 틀 안에서
사회적으로 존재감이 약한 아이들도 그런 곳에서 자유롭게 자기 꿈을 키워나갈 수 있는 그런 '사회적 복지'가
굉장히 잘 드러나는 편이라서 '과연 미국 만세'란 생각마저 들기도 합니다.
= 동시에, 개인적으론 다 쓸데없는 편견적 의식에 가깝지 않나 싶지만,
흥행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불안한 요소가 될 만한 건 과감하게 쳐낼 수 있는
'미쿡 애니계의 진정한 보수'다운 디즈니니까 당연히
국제적인 것도 미국적인 코드 안으로 수렴하여 일관적인 흐름으로 고친 것도 당연하다 싶습니다만,
외려 한국판 [빅 히어로]에선 주인공 형제의 성을 아르마다로 고쳐버리면서 왜색적인 것을 하나 더 없앤 셈 쳐야 겠고,
그런 와중에서 '디즈니가 다른 국가에 미친 영향이 다시 역으로 되돌아와서
디즈니에게 도로 먹혀 버리는' 그런 경지에 다달았다는 느낌입니다.
(그런데 사실 아르마다는 미일 합작으로 출발했던 작품인 트랜스포머 팬에겐, 트랜스포머 시리즈 중 하나가 '트랜스포머 아르마다'란 제목을 달고 있기 때문에 또 나름 미국적이면서 동시에 왜색적인 의미가 있는 이름이기도 합니다…)
마블 코믹스의 빅 히어로 6에서는 히로 타카치로 → 디즈니판 빅 히어로 6에서는 히로 하마다 → 한국판 빅 히어로에서는 히로 아르마다~로,
계속해서 주인공 이름의 개명을 거치면서까지 왜색을 없애려고 시도했는데,
머 작품을 봐서는 그렇게까지 왜색이라기 보다는 그냥 미국 특유의 인종의 박물관~이라던가
국제적인 인상을 주는 캐스팅일 뿐인 정도입니다.
배경도 결국 일본인도 사는 근 미래의 미국 샌프란시스코~라는 인상에 가까워서,
간판이나 잠깐잠깐 나오는 마네키네코 조형물 같은 것 이외엔 거의 일본적인 풍미, 소위 왜색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한국계~라는 설정인 고고 토마고는 그런 의미에서 그냥 '국제적인 대국'인 미국적인 일부분에 머무르는 정도이고,
사실 복장이나 바퀴 등의 묘사에서 디즈니의 다른 작품 '트론'을 연상케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만,
작중에서는 그냥 스케이트 타고 달리는 활발한 말괄량이 누님 타입 캐릭터입니다.
작중 비중이 딱히 많은 건 아니고 그냥 쿵푸 팬더에서 5총사의 타이그리스 보다 약간 비중이 적은 정도인가~ 싶기도 합니다만,
어쨌든 비중에 비해선 나름 인상적이고 또 전반적으로 디즈니의 영향을 받은 왜쿡 애니메이션의 영향이 역 수입되어
일부에서는 외색 걱정 운운하는 소리가 나왔던 작품 답지 않은, 글로벌한 미국 작품 답게 '받아들여 잘 섞은'
다민족 국가에서 사는 다양한 민족들에 대한 배려 아닌 배려가 되어 있는 정도라고 하겠습니다.
- 개인적으로 중요한 건 이 작품에서 유일한 진짜 너드(nerd)인 프레드가 아닐까 합니다.
다들 공대생이고 천재적인 재능을 하나 씩을 갖고 있는 '먹고 살만한 나라니까' 가능한
그런 상아탑에서 근심 없이 살만한 밝은 젊은이들 중에서도,
이 프레드란 친구는 능력도 없고 딱히 뭐 생각도 없지만 그저 밝은 성격의 마스코트 역할입니다.
흔히 말하는 개그 캐릭터지만, 이 친구는 딱히 천재들이나 다른 능력이 있는 다른 친구들에게
어떤 열등감이나 뭐 복잡한 감정 같은 걸 느끼지 않는 듯이 그냥 마스코트를 자처하는 분위기 메이커입니다.
마징가Z로 말하면 보스보로트를 타고 다니는 대장, 보스~같은 개그 캐릭터이고
히어로가 된 다음에는 (울트라맨 에이스의 초수에 가까운 디자인의) 괴수 수트를 입고 불을 뿜습니다만,
따지고 보면 이 그룹에서는 보통사람이기 때문에 외려더 상식인 같지 않은 아이디어를 꺼내서
자기가 되고 싶은 존재가 되자고 하는 히어로 노릇의 '동기'를 보장하는 위치가 된다는 게 눈에 띄이기도 합니다.
즉 가장 무능해 보이는 친구가, 결국 주인공 그룹이 일탈하여 새로운 영역으로 들어갈 계기를 제공한다~는 느낌입니다.
물론 주인공 히로에게 베이맥스를 남긴 것은 히로의 형 테디고,
사건을 일으켜서 베이맥스를 쓰게 만드는 것은 악당이지만
히로 혼자서 할 수 없는 사건의 해결을 위해서 달려온 친구들을 유도한 것은
이 프레드가 '오덕'이기 때문에~ 였다고 생각됩니다.
( 다만 친구들을 부른 것은 베이맥스~라서 따지고 보면 이 작품의 진짜 '원흉'은 베이맥스가 맞습니다만… )
이 친구는 분명히 바보 캐릭터지만 주인공들이 처음 위기에 몰렸을 때 숨을 곳(?)으로 자기 집을 제공하고
자기 집의 재력으로 주인공들이 히어로로 거듭나는 것을 도우며, 자신도 자기가 좋아하는 캐릭터 배분을 하나 받아서
히어로 팀의 멤버로 들어오는 '단순한 조력자에서 나름 한자리 하는 개그 캐릭터로' 거듭나기도 합니다.
( 그리고 이 프레드는 엔딩 뒤의 크레딧에서 짧은 쿠키 영상을 통해서 마지막 웃음을 보장하기도 합니다 …)
= 뭐 그런 히어로 그룹의 탄생 과정 와중에
초반에 나름 큰 사고를 한번 쳐놓고도 친절하게 기다려주는 가면을 쓴 악당.
이 캐릭터는 요카이~라는 설정 상 이름이 있습니다만 작중에선 그 이름이 한번 나오기나 하나 싶은 수준이고,
하는 짓은 주인공 히로가 만든 마이크로봇을 훔쳐서 양산하여 자기 목적에 이용하려는 정도입니다.
예, 일종의 나노머신으로 이루어진 군체인 마이크로봇은 작지만 사용자의 뇌파에 반응하여 다양한 형태를 이루고
작은 물리력을 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큰 물리력과 응용력을 갖는 개미의 '군체' 같은 느낌으로 움직입니다.
하지만 막상 작중에서 이 마이크로봇이 펼치는 액션은 왠지 어디선가 본듯한, 그런 '영향'을 숨기지 않습니다.
요즘 작품으로 말한다면 '강철의 연금술사'에서 소위 연금술 '연성'으로 땅이나 벽을 변화시켜서
주먹이나 뾰죽한 창 같은 것으로 만들어서 공격하듯이 마이크로봇을 변형시켜서 공격하는데,
이 악당이 펼치는 전투 방식은 정말로 강철의 연금술사 애니를 보면 '영향이 제로는 아니다'라고 말할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디즈니니까 특유의 다이나믹한 활공 액션이나, 다양한 동선의 확보로 원래 모티브인 다른 작품의 영향을
디즈니 식으로 재해석 해서 미국식 히어로물에 결합하여 나름대로의 새로운 영역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런 식의 모핑 액션(+촉수액션) 스러운 연출도 고전 미국 작품 중에서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등장인물의 국제적 설정이나, 타국 문화 코드의 영향을 잘 받아 들여서 디즈니 식으로 우려낸 것 이외에는
이 작품의 나머지 내용 쪽에서는 원작 격인 마블 코믹스 작품들에서 흔히 나올 법한
전형적인 아웃사이더 젊은이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각성하여 노력하는 것을 통한 '히어로 탄생극'처럼 흘러갑니다.
- 그리고, 이 히어로 탄생극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이자,
이 작품 최고의 귀요미 캐릭터~이자 일본 만화의 영향도 많이 느껴지는
형이 남긴 유품(…)이란 설정인 건강진찰 도우미로봇 베이맥스는…
어떻게 보면 디자인은 미쉐린 로고의 풍선인간 같고,
말하는 건 전설의 인공지능 자동차 KITT같이 기계적 논리에 따른 유머가 살아 있고
쿵푸팬더처럼 싸우는 걸 배워서 팀의 주력으로 활약합니다.
따지고 보면 이 작품의 다국적 문화 코드의 복합적 짬뽕 섞어찌개 적인 면모를 가장 확고하게 보여주는 것이
이 작품 최고의 귀요미이자 '로봇이기 때문에' 다른 인물들의 인간성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입장인 로봇 베이맥스인 셈입니다.
그리고 베이맥스는 이 작품에서 주인공 히로 만큼이나 중요한 위치에서
자신의 태생을 '디즈니 밖의 코드'에 의존하면서도 가장 디즈니 적인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베이맥스는 한정된 목적을 갖고 만들어진 존재란 측면에서 '아기코끼리 덤보'이며
자신을 만든 존재를 잃었다는 측면에서 밤비와 같은 연약한 존재이지만,
동시에 주인공 히로와 입장을 공유하는 '남겨진 유산'이기도 하며,
또 주인공의 친구이며 동반자이고, 또 가족이 남긴 유산이며
주인공을 위해서 희생과 봉사를 할 수 있는 강한 힘도 지니고 있는
이 작품을 보는 아이들의 인지를 넘는 위치에 존재하는 초월자적인 위치이기도 합니다.
또 거기다가 (훌륭한 교육자적 입장에서) 베이맥스를 통해서
디즈니의 보수적인 감수성이 자연스럽게 작품 중에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 끼어들면서
영웅은 싸우기 위한 존재가 아니라, 사람을 돕고 구하기 위한 존재다~ 라는 걸 확실히 보여주기도 합니다.
물론 이 캐릭터는 마블 코믹스의 다크 히어로나 안티 히어로들과는 차별되는,
보수적 감수성을 중심으로 하는 디즈니의 아동 대상 작품으로 맞추어진 결과물이기도 하고,
또 단순히 똑똑하고 능력이 있던 아이들에게, 무엇이 도덕이고 무엇이 이타적이며
무엇이 희생인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가르쳐주는 그런 교훈적 내용을 보여주는 존재가 되기도 합니다.
외부의 영향을 받은 소재를 철저하게 디즈니적으로 재구성한 베이맥스와는 대조적으로
이 작품의 악당은 (디즈니 전통처럼) 떨어져 죽지는 않지만,
악당으로의 힘인 마이크로봇을 잃고 떨어지는 시츄에이션은 나옵니다.
그리고 (속편이 만약 나온다면) 속편에 악당으로 나올 일은 서없겠거니~ 싶어지는 상황이 됩니다.
(악당이 된 원인인 가족의 죽음이, 히어로 팀의 활약으로 가족이 구출되면서 개심의 기회를 얻고 경찰에 체포됩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서 자신을 되 찾고 성장한 주인공 히어로와 친구들은
새로운 히어로 '빅 히어로 6'라는 그룹이 되는 것으로 작품의 마무리가 지어집니다.
= 시사회에서는 우리말 더빙이 아니라 자막이었기 때문에, 더빙이 어떤 수준일지 알 수는 없었습니다만
뮤지컬 계통이 아니라 (즉, 주인공들이 노래부르는 시퀀스는 안 나와서) 딱히 자막으로 봐서 손해볼 것은 없는 셈입니다.
뭐 주먹왕 랄프나 겨울왕국의 선례에서 보듯이 더빙 쪽의 퀄리티도 무시할 수 없고 또 저연령층 공략 등의 면에서도
우리말 더빙의 퀄리티는 나름 중요한 부분입니다만, 뭐 믿고 가는 디즈니 퀄리티일 거라 생각합니다.
이것저것 장광설이 길어 졌는데,
결국 작품 자체를 갖고 말한다면, 결과물로는
디즈니가 다른 회사의 다른 작품에서 볼 수 있던 다른 코드들을 가져온 것 치고
여태까지 보지 않은 것을 보여주었다고 말하긴 힘들지만
지금까지 보아왔던 것을 가장 무난하고 또 편하게 풀어주었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몇번이고 말하지만 디즈니가 다른 쪽에 준 영향을 되돌려 받아,
그 영향을 다시 디즈니 식으로 바꾸어 다시 보여준다는 느낌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일본 만화 '강철의 연금술사' 마지막 권에서 주인공 에드워드 엘릭이 언급하는
10을 받으면 11를 되돌려 준다~는 등가교환의 법칙을 넘는 새로운 법칙을 실천하는 것 같다~라는 느낌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 작품은 오랜 애니메이션 제작의 역사 속에서
국가를 뛰어넘어 세계의 많은 창작자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디즈니가
마블 코믹스를 비롯하여 일본 로봇 만화라던가 다른 작품들의 내용 코드를 받아 들이면서
그만큼 디즈니 스럽게 '보수적이고' 또 진부하다~싶을 정도의 장르 공식에 철저하게 적용하여
디즈니 나름대로의 발전과 방향 제시를 하는 그런 느낌의 작품이라고 하겠습니다.
디즈니가 다른 쪽에 주었던 영향이 다시 디즈니로 되돌아와서
디즈니가 그 다른 쪽의 영향을 숨기지 않고 수용하여, 잘 섞인 잡탕찌개로 만들어서
확대 재생산하여 나름대로의 풍미를 확실히 어필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막상 그런 주제에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기존 장르 공식을 배반하듯이 '멋지게 위기를 탈출하고 해피 엔딩'~으로 가는 건
전작 겨울왕국에서도 그랬듯이 '주인공의 (가벼운) 타락'을 통한 위기감 조성 이외에도,
가장 중요한 조역인 누군가의 위기가 펼쳐지면서, 주인공의 탈출을 위해선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다~라는
서글픈 시츄에이션으로 이어집니다.
(개인적으론 이 마지막 탈출 시퀀스에서 조금 불만이랄까 의문이 남았는데,
개그 만화의 공식에 따라 베이맥스의 공기를 빼서 그 김빠지는 추진력~으로 날아서 탈출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형이 만든게 아니라' 히로가 만들어 달아준 로켓 펀치를 사용해서 탈출하는 게 좀 억지 감동~을 유도하는게 아닌가 뭐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만, 어쨌든 간에 그런 미묘한 편차가 디즈니 본래의 개성일 수도 있다고 생각도 들고 그렇습니다…)
- 어쨌든 결말이 어떻게 되는지는 스포일러가 되니 넘어가고,
이 작품에서 또 하나 튀는 점이 악역 인물의 위치입니다.
사실 보는 도중에 '설마 형이 악당은 아니겠지~?' 하고 삐딱한 심정에서 불안하게 지켜 보았습니다만,
그렇게 까지 삐딱하게 갈거면 '보수적인' 디즈니가 아니죠.
이번 작품의 악당은 보다보면 다들 아마 그렇겠거니~하고 흔히 생각할 그 사람이 아닙니다.
대단한 반전이 있다거나 한 건 아니지만, 외려 초중반에 너무 쉽게 '저 놈이 수상하네'라고 나와버리는 상황이라
외려 역으로 '이렇게 뻔하게 나오면 저 놈은 범인이 아닐거야~'라는 걸 역으로 짚어 가는 식이 되어버렸달까요…?
어쨌든 이 작품에서 중요한 건 악당이 누구냐, 왜 이런 일을 벌였냐~가 아니라,
자기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라는 것이기 때문에,
주인공 히로는 범인의 정체를 알고 분노해서 형이 남긴 유산인 베이맥스를 잘못 사용하는 실수를 범하고
그 실수를 통해서 깨달음을 얻어 성장하는 것이 중요하게 그려집니다.
그 주인공이 성장하는 과정 중간에서 베이맥스가 기록으로 보여주는 형 테디의 모습은 순수한 만큼 강한 의지~같은 것이기도 하고,
또 재능이 있어도 노력과 의지가 없이는 뭔가 이룰 수 없다~는 걸 보여주는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는 교훈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형 테디의 의지를 이어받은 입장인 베이맥스 또한,
프로그램된 것 이상으로~, 인간으로 말하면 교육받은 것 이상으로,
자신의 목적과 이념에 충실하여 마지막까지 주인공 히로를 위해서 자기 역할에 충실하는 것에서 작은 감동을 남깁니다.
이렇게 베이맥스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그려지는 주인공 히로의 형 테디는,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굉장히 인상적인 캐릭터라서,
어떻게 보면 주인공 히로보다 형이 더 오래 나와서 좀 더 활약했으면 싶을 정도란 기분도 듭니다.
대신 베이맥스는 히로의 형 테디가 말하는 '타인을 위해서 재능을 사용한다'라는 걸,
직간접적으로 작품 내에서 보여주기도 하는 존재이고
또 가족이 남겨준 유산(?)이 로봇이란 로봇물 장르 공식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며,
마징가 식으로 말하면 '신도 악마도 될 수 있는 힘'을 갖고서 '복수'를 선택을 했다가도
"그건 너의 정신 건강에 도움이 안돼"라는 식으로 거절할 수 있는 '형의 의지를 이어받은' 설명자이면서
주인공을 정신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피조물이기도 합니다.
( 어떻게 보면, 마치 아이언맨에서 갑옷을 만드는 것으로 자아를 찾아가고 성장하는 삐딱한 천재 캐릭터인 토니 스타크의 디즈니 적인 변형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
= 어쨌든 주인공은 악당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 같은 그런 부정적 감정 때문에
작품 최고의 귀요미 의료 로봇 베이맥스에 (본래 용도를 넘어서는) 싸움기술을 프로그램하고
비행장치를 달고 메디컬 스캔 센서를 강화하여,
어떤 의미론 프라이버시 침해가 될 수 있는 '개인정보'인
혈액형 등의 의료 정보를 탐색하게 하는 등 폭주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악당과의 싸움에서 직접적인 살의~랄까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친구들을 실망시키기도 합니다.
이런 주인공의 얕은 타락에 의해서
과거 디즈니라면 조금 꺼려할 '막나가는' 계열의 소재도 이 작품에서는 그냥 슥 지나가는 식으로 다루고 넘어갑니다.
사실 이런 부분은 이 작품에선 가볍게 다뤄집니다만,
[다크 나이트]에서 휴대폰 전화기 주파수로 도시 전체를 감청해서 조커를 찾아내듯이,
베이맥스를 통해 원거리에서 심박수를 체크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면
일본 애니메이션 [PSYCHO-PASS]에서의 시빌라 시스템처럼 심박이나 신체 상황등으로 범죄 계수를 체크해서
[마이너리티 레포트]처럼 사전에 범죄를 예방한다는 측면에서 악용되거나 그럴 수도 있는 등,
제법 무거운 소재거리가 될 수도 있었는데, 이 작품에서는 그런 것에 대한 고찰보다는
그냥 임시로 얻은 능력을 잠깐 활용하듯이 가볍게 넘겨버리고,
바로 악당과의 결전으로 넘어간다는 인상입니다.
다행이 이 작품에선 이 원거리 스캔 기능이 악당을 찾는 데만 한번 쓰이고,
그 이후에는 클라이막스에서 히로가 단순히 악당을 무찌르는게 아니라 '사람을 구한다'라는 진정한 영웅의 선택을 하게 되는 근거가 되는 역할로 베이맥스의 메디컬 스캔 기능이 사용됩니다만…
(물론 마치 스타게이트~처럼 생긴 전송장치를 통해서 넘어 가는 차원 너머의 이공간에 갇힌 사람도 스캔한다는 건 좀 사기입니다만…)
그리고 사실 작중 묘사만 본다면 어째 이 기능은 우주소년 아톰의 투시능력과도 비슷한 인상으로 묘사됩니다.
여담으로 작중 최고의 귀여미로봇 베이맥스 이외에도
작중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소재인 마이크로봇이 있는데,
예를 들면 턴에이 건담의 나노머신~을 방류하는 '월광접'까지는 아니더라도
또한 개개이며 전체인 '군체'에 가까운 마이크로봇의 개념은, 어떻게 보면
80년대판 애니메이션 아톰 에피소드 중에서
자연 에너지가 아닌 인간이 만든 에너지를 흡수하는 (표범 모양의) 특수 생명체와 싸우기 위해서
아톰을 중심으로 작중 세계관의 로봇들이 모여서 합체해 거대한 거인이 되어 싸우는 에피소드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 역시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다른 데서 가져온 코드를 디즈니 식으로 잘 재해석한 결과물이라고 하겠습니다… )
- 하여튼 결론은
저 개인적으론 그냥 미국식 히어로 장르물에서 '은퇴한 초인'의 이야기를 세련되게 그려낸 정도에 그친
[인크레더블]보다도 이 쪽이 더 '새로운 것을 받아 들이고 그걸 디즈니 식으로 다시 정리해서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확실히 더 좋았다는 기분입니다.
픽사는 WALL-E나 UP 같은 오리지날 작품들을 멋들어지게 뽑아냈지만,
마블 코믹스 원작을 이렇게 자기네 스타일로 맞추지는 못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 작품은 오랫동안 (동화나 소설 등의) 원작이 있는 작품을 만들면서
'가장 무난하고 보수적인' 각색을 꾸준히 해온 디즈니 다운 결과물이면서,
동시에 가장 심심하고 전형적인 아동대상 히어로물의 탄생편으로 우러난
잡탕찌개에 가까운 복합물이란 인상입니다.
그리고, 마블 코믹스 원작 작품은 거의 다 늘 그렇듯이(?) 이번에도 엔딩 크레딧 뒤에 쿠키가 숨겨져 있는데,
그 쿠키를 보고나서야 비로소 마블 코믹스와 루카스필름을 사버린 디즈니의 진정한 무서움(?)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고명한 마블 코믹스의 '스탠 리'가 모델링된 모습으로 카메오 출연하여 빅 히어로 멤버 중 한명인 '부자 너드' 프레드의 아버지를 연기합니다. 매우 웃기지만 동시에 헐~하고 놀라고 묘한 기분이 들게 되는 부분이지요.)
하여튼 이 [빅 히어로]는 '디즈니 신세기' 같은 걸 제창하는 작품은 아니지만,
겨울왕국으로 기록적인 흥행을 거둔 일본 시장을 염두에 두고
최대한의 일본 지향적인 코드를 기존의 디즈니~스러운 요소들과 뒤섞어서
멋지게 우려낸 잡탕지게임은 확실하다고 하고 싶습니다.
= 한국의 아이들이 좋아할 작품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는 보는 동안 유쾌하게 즐길 수 있었고,
애니메이션으로의 쾌감은 기존 디즈니 작품과 비교해도 절대로 꿀리지 않는다 생각합니다만…
전작 겨울왕국이 작품의 완성도에 비해서 캐릭터의 인기 때문에 생각 이상의 빅 히트를 했다는 기분이라면,
이 작품의 캐릭터들이 겨울왕국의 캐릭터들 처럼 인기가 있을 지는 모르겠습니다.
분명히 베이맥스는 올라프 이상의 귀요미이며,
평범한 아이들에게 무엇이 영웅의 조건인지 가르치는 훌륭한 교육자이며
중요 캐릭터가 남긴 유품이자 주인공 히로의 친구를 대신할 수 있는 동반자적
가까운 위치라는 복잡한 설정 하에서
나름 멋진 조역 캐릭터로 분명히 강한 인상을 주기도 합니다만…,
상대적으로 빅 히어로 6의 다른 멤버들이 '그 자리에 있기 위한 조력 캐릭터'에 그친다는 인상이 있는 것은
조금 아쉽기도 합니다.
속편이 나올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누구라도 한번 보고 느끼고,
또 영향을 주고 받고 돌고돌아가는 그런 관계를 생각해 볼만한 그런 작품임은 확실하다 생각합니다.
:D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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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글들이라 마음에 안드셔도 아무 말이나 덧붙이는 것은 사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