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럽지만, 일본 특유의 장르 취급 받는 슈퍼로봇물 애니메이션 작품 중 "초전자 머신 볼테스Ⅴ"라는 작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과거 필리핀에서 이 작품이 방송할 때 아주 인기가 있어서, 21세기 들어서 필리핀 방송국이 판권을 사와서 실사 드라마로 리메이크를 한 작품이 나왔는데
이게 "볼테스Ⅴ : 레거시"란 제목으로 2023년에 방송되어 무사히 완결까지 끝난지 좀 되었습니다.
국내에는 정식으로 수입된 데가 없지만 유투브에 올라오는 데가 있어서 보게 되었는데,
당연하지만, 원전은 1977년 작인 일본의 슈퍼로봇물 애니메이션 "초전자 머신 볼테스Ⅴ(파이브)"입니다.
국내에서는 '볼트 파이브'라는 제목으로 초반 부분이 대여점 비디오 용으로 출시가 되었고, 케이블이나 공중파 TV방송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일본에서도 나름 명작 취급 받으면서, 나가하마 낭만로봇 시리즈 운운하는 전작격인 "초전자로봇 콤배틀러V"와 후작격인 "투장 다이모스"와 함께 3부작 아닌 3부작 취급 받는 연작이며, 그 중에서 드라마 적으론 평가가 높았던 편에 들어갑니다.
이런 작품이 본고장 일본도 아니라 굳이 필리핀에서 리메이크가 되었다는 자체가 좀 특이한 케이스이긴 한데, 막상 결과물이 나온 걸 보니 원작을 잘 소화하려 노력했다는 것과 동시에,
적당히 현재 세계 영상물의 기준이 어디에 맞춰진 걸까 생각해볼 기회가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만, 머 그건 이 글에서 팔 내용은 아니니 넘어가겠습니다.
머 스포일러도 있고 하니 굳이 이야기를 디테일하게 설명할 것까지는 없겠지만,
먼 우주에 있는 보아잔 별(성:星)의 군대가 지구를 침략하려 하고, 이 사실을 미리 안 고우 켄타로, 고우 미츠요 부부하고 그 부부의 스승과 관련자들이 만들어낸 슈퍼로봇 볼테스Ⅴ를 가지고서 보아잔 별의 침략군과 싸운다는 전형적인 이야기입니다.
당연히 슈퍼로봇 볼테스의 파일롯은 고우 부부의 자녀들 고우 켄이치, 고우 다이지로, 고우 히로시=고우 형제들 및 그 관련자들이고요.
보아잔 별에서 온 침략군은 일단은 명목은 지구 정복이란 목표가 있긴 하지만, 그 자체 만이 목적은 아니고 실제로는 다른 정치적 상황적 의미가 숨겨져 있었다 라는 정도가 있었고요.
그 유명한 "마징가Z" 이후로 정착된 1주일에 1화 방송하면서 아군의 슈퍼로봇 1대에 적군이 강력한 적수(거대한 괴수라던가 로봇이라던가)를 보내와서 대결하는 도식적인 전개를 따라갑니다만,
필리핀 리메이크판 "볼테스Ⅴ: 레거시"에서는 전투의 비중을 좀 줄이고 대신 인물들의 드라마 쪽을 좀 더 보강해서 90화라는 꽤 긴 화 수로 완결이 되었습니다.
일본에서도 방송한다 어쩐다 하는데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모르겠군요.
머 어쨌든 요즘 분위기도 있고 해서 정치적인 이야기라던가 이것저것 생각할 건덕지는 많이 있었는데, 굳이 글까지 적을 필요는 없었지만…
일단 이 작품은 생각보다 많이 고쳤고 생각보다 달라졌습니다.
특히 최종화에서 바뀐 부분은 거의 작품의 주제가 미묘하게 달라지게 되었고,
같은 드라마의 같은 내용이라도 받아들이는 국가의 문화나 정서적 차이 및 정치성 등등 여러가지가 달라지게 되었음을 다시 깨닫는 기회가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일본 원작은 흔히 로봇물에 대해 생각하기 쉬운 단순한 권선징악적 내용이기 보다는, 좀더 정치세력 대 정치세력이란 인상이 남는 데
거기에 적당히 드라마적인 부분을 강조하고 귀족정이나 기타 등등 근대에 대한 동경이나 그런 정서 같은 것도 녹아있는 당시로는 독특한 작품이었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후 1979년에 기동전사 건담이 나오면서 보다 현대전에 가까운 묘사 및 군수산업이나 기타 등등 현대적 소대가 중심이 되고, 다그람 이후론 로봇물도 한번 뒤집어 진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설정 상 보아잔 별은 뿔이 있는 사람들이 왕족+귀족이고 뿔이 없는 사람들이 평민인 철저한 계급 사회로,
나름 높은 과학력을 갖고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왕정제를 고수하고 있는 지라 마치 중세 유럽 스타일의 귀족과 산업혁명 직전의 평민들이 미묘하게 알력이 있는 머 그런 정도의 사회 묘사가 이루어지는데,
보아잔 왕족과 귀족 중에서의 권력 다툼 중에 전 황제의 서자였다가 즉위한 현 황제 '르 잔바질'이 전 황제의 핏줄인 프린스 하이넬(왕자라기 보다는 대공 급이겠죠)을 지구 침략군으로 밖으로 내보내서,
만약 하이넬이 전쟁에서 죽거나 패전 책임으로 제거할 계획을 진행한 탓으로 지구가 엉뚱하게 침략 전쟁에 휘말린 셈입니다. (다만 이것도 나름 드라마의 숨겨진 비밀 때문에 단순히 휘말린 것만은 아니게 되지만요…)
프린스 하이넬은 그래도 나름 개념잡힌 귀족이라 현 황제의 전횡에 불만이 있지만 일단은 자신의 충성을 증명하기 위해 지구 침략에 나서지만 그 와중에 출생의 비밀이나 여러가지 드라마가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밝혀지는 진실과 함께 지구 측에서는 볼테스 팀이 보아잔 별로 역공을 들어가고, 보아잔 별의 시민혁명군과 볼테스 팀이 연합하여 침략전을 막는 결전에 들어가게 되는데…
하여튼 결말을 보면, 일본 판에서는 결국 '시민 혁명'이 일어나서 평화와 재견을 위한 새로운 보아잔의 시작으로 결말 지어지고, 주인공들은 침략을 막는 구국의 모험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갑니다만…,
필리핀 리메이크 드라마 판에서는 보아잔에 정당하게 새로운 왕족이 즉위하고, 주인공들은 모험을 끝내고 돌아와서 각자의 인생을 살게 되었지만 언젠가 이런 일이 있으면 그들은 다시 뭉칠 것이다~ 같은 투로 디테일이 꽤 바뀌었다가 결론입니다.
이게 일본과 필리핀의 문화적 정치적 차이 만은 아닐거고, 필리핀 리메이크 판이 그냥 후일담을 좀 더 넣고 인물 디테일을 추가하는 김에,
자기들의 '팬심'을 어필하는 "그 들은 우리와 함께 있다"라는 투의 동시대적 공감을 요구하고 바라는 것처럼 보입니다.
최종화 마지막에 THE END나 FIN이 뜨는 것이 아니라 "VOLTES V : LEGACY WILL LIVE ON…" 으로 끝나거든요.
일본 원판에서는 아직 입헌군주제가 유지되는 나라 답지 않다 싶을 정도로 시민혁명에 중심 드라마가 실려있고, 보아잔 별의 지구 침략은 현 집권층인 왕가와 귀족이 반대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무리한 출병이었고,
어떤 의미로는 반대파를 전쟁에 앞장세운 풍신수길과 임진왜란과도 겹쳐 보이는데,
필리핀 판에서는 그냥 재미있고 인기 있던 드라마 정도로 다루어져서 그걸 현재 필리핀 영상기술로 최대한 재현하려고 노력했다는 게 개인적인 결론이 되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좀더 투명(?)해지고, 대신 주역들 간의 연애나 인간 관계들을 좀더 파고 들어서, 프린스 하이넬이 직접 지구인으로 변장해서 볼테스 팀의 기지에 잠입하는 등의 디테일이 추가되었습니다.
갑자기 정치적인 이야기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은 그냥 윗대가리 몇놈을 쳐낸다고 어떻게 끝날 수 있는 경우는 아닐 것입니다.
갑자기 정치적인 이야기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은 그냥 윗대가리 몇놈을 쳐낸다고 어떻게 끝날 수 있는 경우는 아닐 것입니다.
로봇 만화에선 외계 행성 보아잔을 지배하던 귀족들을 몰아내고 시민정으로 바꾸었다는 식으로 "우린 침략도 막았고 외국을 도왔다 끝" 하고 돌아가는 걸로 간단히 정리되었지만, 이게 현실이라면 꽤 복잡해 지겠지요.
그런 의미에선 좀더 만화적인 전개로 후루룩 파바박 결말이 나버린 전작 '콤배틀러V' 쪽이 차라리 그런가 보다 납득하긴 쉬울 지도 모릅니다.
사실 원작에서도 이런 것에 대한 의문이 없었던 것은 아닌지 그냥 보아잔 별의 일은 보아잔에게 맡기고 지구의 귀환에 들어가는 식으로 간단히 끝냈다는 기분이고요.
필리핀 판에서는 약간 타협을 해서 왕정은 계속되지만 뭔가 외교관계나 정치적으로는 좀더 현실적인 입장으로 '일단 평화를 이루었다' 정도로 끝났단 기분이네요.
개인적으론 메카가 너무 마이클 베이 트랜스포머의 나쁜 영향(!)을 받은 게 완전히 맘에 들지는 않지만, 결과적으로 기존 작과 차별화된 조각 장갑 부분이 어필하는 부분도 있는데다,
액션 면에선 확실히 발전된 부분이나 묘사적으로 어필하는 부분도 있어서 눈여겨 볼 부분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로봇으로 합체 하는 동안에 적은 놀고 있는가 같은 부분을, 쇠사슬을 쏴서 적을 묶어 놓고 합체에 들어간다거나 하는 등의 보강된 부분이 좀 있습니다)
하여튼 결과적으로 일본 원판을 최대한 존중하면서도 필리판 특유의 개성을 살리는 현지화에 성공했고,
애니메이션 원작을 드라마로 만들면서 특유의 유치함을 남기는 것과 동시에 독특한 분위기를 만드는 데엔 성공했다고 하겠습니다.
'파일롯 슈츠' 등을 보고 유치하게 보인다 말할 수는 있겠지만 중심이 되어야 할 로봇 액션은 일단 나름 괜찮게 뽑아냈고, 일단 원작의 특징이었던 정치적 암투가 숨겨진 귀족정 침략세력과 얽히는 드라마는 잘 살린 편이라고 하겠습니다.
(사실 이런 영상물을 보는 한국인들 기준이 좀 이상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스포일러 입니다만 (글자색 바꿈으로 감춥니다. 마우스 드래그 필요)
볼테스를 만든 고우 켄타로는 사실, 라 고르 라는 이름의 보아잔 별 황족이었고 전 황제의 아들로 계승 서열도 높았지만 유전적 문제로 뿔이 없어서 귀족이 될 수 없던 상황이었기에 정치적으로 지구로 망명을 와서 지구인과 결혼해서 지구인으로 살고 있었는데,
그가 보아잔 별에 남기고 온 아들이 프린스 하이넬이었고 전황제의 서자인 현 황제가 정치적 경쟁자이자 눈엣가시인 하이넬을 제거하기 위해 고우 켄타로가 도망친 지구를 굳이 공격하는 정치적 꼼수를 썼던 것입니다.
그리고 고우의 지구 아들이자 볼테스의 파일럿 고우 켄이치는 어머니가 다른 형제인 하이넬과 싸우고 있었던 것이고요, 죽은 줄 알았던 고우 켄타로는 보아잔의 시민들과 연합해서 혁명군을 이끌어 냈고, 볼테스 팀을 뒤에서 도왔던 것입니다.
결국 보아잔으로 돌아가 시민군에서 싸우는 아버지를 찾아서 고우 켄이치와 볼테스 팀은 보아잔 별로 쳐들어가서 혁명군과 함께 보아잔 군을 물리치고,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안 하이넬은 절망해서 보아잔 별의 수호신 석상으로 뛰어내리는데 이 수호신이 사실 보아잔 군의 비밀병기 거대로봇 고돌이어서 지구의 로봇 볼테스와 최종 결전이 벌어집니다.
원작에선 로봇 싸움은 별로 중요하지 않고 마지막엔 하이넬도 켄이치도 로봇에서 내려서 맨몸으로 백병전을 펼치는데,
그 와중에 보아잔의 황제 르 잔바질이 혼자 도망치려고 하는 걸 보고 하이넬이 그를 죽이고 자신도 불길 속으로 모습을 감추면서 보아잔의 귀족정이 끝나면서 결말이 나는데,
필리핀 판에서는 보아잔의 수호신 고돌과 볼테스의 대결이 강화되고, 이후 하이넬과 켄이치의 대결도 결말이 바뀌는 등의 변경점이 생겼습니다.
개인적으론 필리핀 판의 결말도 좋았다 생각합니다. (스포일러 종료)
사실, 만약 일본 현지에선 별로 인기가 없고 한국에서만 인기 있는 로봇물 작품 "메칸더V(원제: 합신전대 메칸더 로보)"를 한국의 기술로 드라마로 만든다고 하면,
과연 이 필리핀판 "볼테스Ⅴ : 레거시" 만큼 만들 수 있을 것인가 하고 생각해보게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솔직히 말해서 무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쪽 장르에 대한 관념적 지식은 있어도 개념적 지식이 없다 시피 한 시대가 되었다고 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이 필리핀판 볼테스는 정말 지금이니까 나온 거고 필리핀이니까 나온게 아닐까 합니다.
한국도 해외 작품들 수입해서 적당히 변형해서 만들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한국 컨텐츠를 수출한다고 어깨에 힘주고 있어도 정작 웹툰 등 원작이 있는 경우 각색 능력이나 여러가지에 아직 문제가 있지 않나 싶기도 하거든요.
하여튼 필리핀 사람들의 괴이한 팬심으로 등장한 특수한 케이스인데, 이게 꼭 나쁜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론 이런저런 변경점이 확실히 차이점을 좋은 방향으로 잘 어필했고, 미국 등에서 일본 원작의 영상물을 만드는 것과의 확실한 차이점을 잘 보여주었다 생각합니다.
넷플릭스의 원피스 드라마보다 더 길지만 일단 완결이 되었기 때문에 국내 수입이 되어도 좋겠다 싶은데, 과연 이루어질지 모르겠네요.
반쯤 우익화된 넷덕계열에서 ㅇsuckㅇ 정권이 일본 영상물 더 풀어주었다 어쩐다 하는 헛소리를 퍼트리는 모양인데, 정작 이런 게 안들어 오고 있는데 무슨 소리냐 싶습니다.
사실 한국도 혁명이 필요한 상황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거라 봅니다.
결론은 일본판은 이상하게 혁명에 중심이 실렸는데, 필리핀판은 그냥 외국 드라마 내용을 충실하게 재현하는 엔터테인먼트에 중심이 실렸다~입니다.
한국에서 '인랑'을 영화화 할때 최대한 현지화한다고 했지만, 결국 주연배우들이 맞싸움하는 액션 중인데 서로 얼굴 때리지 않는 괴상한 물건이 나왔지요.
이런 케이스가 있는 것도 재미있고 한번 시간 되실 때 살펴보시는 건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하여튼 별 쓸데없는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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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글들이라 마음에 안드셔도 아무 말이나 덧붙이는 것은 사절합니다.